서진영교수의 중국정치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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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중국은 무엇인가
 중국정치연구실  | 2009·11·06 15:17 | HIT : 9,077 | VOTE : 798 |
  * 다음은 2009년 11월 6일에 개최된 제2회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우당 Lecture Series에서 행한 필자의 강연이다

        I. 한국의 중국연구 시대구분과 세대론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서 필자는 1948년 건국이후 현재까지 한국의 중국연구를 불모기-개화기-발전기로 구분하면서 각 시기별 연구주제의 특징과 쟁점을 정리하고, 중국정치 연구가 3세대 연구자들을 거치면서 양적인 팽창과 질적인 다양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 서진영, “ 건국이후 한국의 현대중국(정치)연구: 주제와 동향,” 대한민국 학술원 인문·사회과학편 9집 [한국의 학술연구: 정치학·사회학] (2008), pp. 261-292 참조 )

 

이를테면, 한국의 중국연구자들을 1948-1970년의 불모기에 한국의 현대 중국정치 연구의 씨앗을 뿌린 1세대 연구자들과, 그리고 1971년-1990년의 개화기에 현대 중국정치 연구를 주도한 2세대, 그리고 한중 수교이후 중국연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중국이 개방된 시기에 등장한 3세대,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 중국연구를 주도해 갈 새로운 4세대로 구분할 수 있으며, 각 세대는 나름대로의 학문적 특징과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즉,  1세대가 열악한 냉전시대에 현대중국 정치의 연구를 시작한 개척자의 세대이었다면, 2세대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해외 유학, 특히 미국 유학을 통해 사회과학적 훈련을 받고 사회과학의 대상으로 중국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세대와 2세대 연구자들에게 공통적 한계는 중국에 대한 접근성의 문제이었다. 특히, 필자와 같은 2세대는 중국을 현지 방문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사회과학의 연구대상으로 중국에 접근했기 때문에 중국의 문화와 현지 사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또 2세대의 사회과학적 중국 이해는 지나치게 미국 및 서구식 관점에서 중국과 동양 사회를 분석하려 한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문제점은 1992년 한중수교이후 중국방문이나 중국유학이 급증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1992년 이후 등장한 3세대 중국 연구자들은 중국 현지 언어와 현지 사정에 익숙하다는 이점을 활용해 2세대 연구가들의 취약점이었던 중국 연구의 현장성과 실증성을 제고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중국의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중국정치 연구와 다른 사회과학 연구의 연계성을 간과하는 위험성도 안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등장하는 현대중국 연구의 4세대 연구자들은 1세대의 개척정신과 2세대의 사회과학적 이론 지향성, 그리고 3세대의 중국적 논리와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모두 계승하여 우리나라의 현대중국 정치 연구가 서구식도 아니고 중국식도 아닌 한국식의 중국학으로 발전해 세계 학계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II. 사회과학의 대상으로서 중국연구: 하나의 질문 4가지 주제


 필자가 중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리적 근접성이나 역사·문화적 연대성의 관점에서 한반도의 운명에 중국이 대단히 중요할 것이란 인식에서 출발했지만, 중국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현대중국이 끊임없이 사회과학적 문제의식을 촉발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중국 현대사는 사회과학에서 제기하고 있는 이론들, 이를테면 근대화 이론과 혁명이론을 검증해 볼 수 있는 자료의 보고이며, 또한 중국식 사회주의의 등장과 변화과정은 체제 개혁과 체제 이행에 대한 사회과학적 이론 탐구를 자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의 근·현대사는 배링턴 무어 (Barrington Moore Jr)가 제기한 다양한 근대화의 역사적 경로중의 하나인 농민혁명을 통한 좌파 독재로의 체제 이행을 보여준 전형적 사례이었다.

 

또한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은 스탈린시대의 소련과 마찬가지로 ‘위로부터의 혁명’을 통한 체제 개편의 실험장이었다면,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은 기존의 경직된 당국가체제와 계획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와 연성 권위주의체제로 스스로 변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탈사회주의 이행과정에서 체제 붕괴를 경험한 소련이나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평화적 체제이행’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중국은 다시 한 번 사회과학자들에게 체제이행에 관한 중국식 모델에 대한 이론적 관심과 논쟁을 촉발하고 있는 것이다. 왜 중국적 사회주의는 소련과 달리 사회주의 체제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중국적 체제 이행의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 대담한 개혁 개방을 통해 고도성장 시대를 여는데 성공한 부강한 중국은 과거 개발독재의 사례와 달리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제3의 길, 즉, 중국식 민주주의의 길을 찾아 갈 것인가? 그리고 부강한 중국의 등장은 국제적 세력구조를 어떻게 변형시킬 것인가? 과연 중국은 우리에게 위기인가 기회인가?

 

이런 문제의식은 따지고 보면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중국공산당의 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었다. 중국 혁명의 승리를 견인해 낸 중국공산당의 힘, 오랜 전쟁과 혼란 끝에 마침내 건국과 사회주의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중국 공산당의 힘, 그리고 개혁 개방을 통해 기존의 사회주의체제의 위기를 극복하고, 고도성장시대를 실현하여 마침내 부강한 중국의 건설을 현실로 만들 수 있게 한  ‘중국공산당의 힘’은 무엇인가. 그런 중국공산당의 힘은 21세기 민주화의 도전에도 역시 유효할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다시 세계의 중심 국가로 부상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결국 이런 문제의식은 필자의 4권의 주요 저서 주제가 되었다. 즉, 중국혁명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이 마침내 승리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탐색한 [중국혁명사] (한울, 1992), 마오쩌둥의 중국식 사회주의와 덩샤오핑의 중국적 사회주의가 어떻게 중국을 변혁시키고 있으며, 왜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위기를 회피할 수 있었는가를 규명하려고 한 [현대중국정치론] (나남, 1997), 그리고 부강한 중국의 등장이 우리에게 위기인가 기회인가를 묻는 [21세기 중국외교정책] (폴리테이아, 2006)과, 개혁개방의 성공으로 마침내  고도성장시대를 실현한 중국식 사회주의가 당면한 ‘성공의 역설’을 분석하여 중국의 미래를 탐색해 보려고 한 [21세기 중국정치] (폴리테이아, 2008)는 모두 ‘중국공산당의 힘’을 규명하려고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중국혁명사] (1992)-왜 중국혁명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이 승리할 수 있었는가


필자는 먼저 중국공산당의 승리는 사전에 미리 결정된 것도 아니며, 단일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였다. 즉, 중국혁명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의 승리 요인에 대한 Chalmers Johnson의 농민 민족주의론, Mark Selden의 사회주의 혁명론, 그리고 Tetsuya Kataoka의 조직론 등은 모두 중국 공산당의 승리 요인 일부만을 강조한 것이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승리는 이처럼 단일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인이 상승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파란 만장한 역사를 전체적으로 분석하면 중국 공산당은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에서의 다양한 형식의 혁명운동을 경험했으며, 몇 차례에 걸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중국 현실에 부합하는 혁명 전략과 정책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여 마침내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옌안(延安)시대 (1935-1947)에 항일민족통일전선과 농촌 혁명근거지를 중심으로 한 게릴라운동의 경험 등을 통해 형성된 복합적인 이데올로기적 성향과 배경을 가진 세력들이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연합· 단합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중국혁명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의 승리를 견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 내부에는 3가지 서로 다른 혁명 경험 (전형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신민주주의혁명/급진적인 옌안공산주의혁명)을 계승하는 정치세력들이 존재하고, 이런 상이한 전통과 성향을 가지는 정치 세력들 간의 협력과 경쟁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유연성과 중국 정치의 역동성을 설명할 수 있으며, 그런 유연성과 역동성이 중국공산당의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2) [현대중국정치론] (1997)-왜 중국은 소련 사회주의와 달리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1989년의 천안문사태와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 그리고 마침내 소련식 사회주의의 붕괴로 말미암아 일부에서는 역사의 종언이 선언되는 사회주의의 대실패 (Grand Failure)의 시대에 중국식 사회주의가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에서 중국공산당의 1당 독재체제를 견지하면서도 대담한 시장경제와 대외경제개방을 도입하여 마침내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실현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필자는 1949년 이후 현재까지 현대 중국 정치의 이념적-정책적 역동성을 중국 공산당 내부에 존재한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와 정책 성향의 경쟁과 갈등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앞에서 지적한 중국 공산당은 3가지 서로 다른 성향의 혁명 전통 (전통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옌안공산주의/신민주주의혁명)이 1949년 이후 사회주의 중국의 건설과정에 반영되면서 다양한 중국식 사회주의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즉, 건국 초기에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전통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적 경제발전 경험을 도입하여 전형적인 당국가체제와 계획경제체제를 건설하려고 하였고, 이런 정책노선에 입각해 중국 사회는 단기간에 사회주의 사회로 전환되고 근대공업의 기초가 마련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중공업 중심의 급진적인 공업화와 사회주의 개조작업의 한계와 부작용이 누적되면서 마오쩌둥과 중국 지도부는 새로운 방식의 중국적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소련 방식의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모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공동부유의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마오쩌둥은 옌안 공산주의 전통에 따른 중국식 사회주의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즉, 마오쩌둥은 예안공산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민대중의 혁명정신을 동원할 수 있으면 중국은 짧은 시간 안에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혁명적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사회관습과 문화는 물론이거니와 기존의 공산당 중심의 정치질서까지 과감하게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문화대혁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과 같은 마오쩌둥의 ‘혁명적 대실험’은 대실패로 끝나고, 인민대중에게 ‘대재난’을 초래하였다. 따라서 마오쩌둥이 사망한 이후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는 기존의 전통적 마르크스-레닌주의 전통이나 마오쩌둥의 옌안공산주의 전통과 구별되는 새로운 실용주의 노선이 등장하게 되었다. 즉, 계급적 화해와 협력에 바탕을 둔 신민주주의 경험에 근거한 실용주의 세력들이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개혁 연합세력을 형성해  1978년 말에 ‘역사적 노선전환’을 선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덩샤오핑의 개혁연합세력들은 공산당 1당 지배체제를 견지하면서도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적 경제제도를 과감하게 도입함으로서 ‘사회주의 정치’와 ‘자본주의 경제’의 결합을 시도하는 독특한 실험을 단행하였고, 그런 중국의 개혁 사회주의 실험은 고도성장 경제를 산출해 냄으로써  성공하였고, 그런 성공에 힘입어 중국적 사회주의는 구소련이나 동구 사회주의와 달리 몰락의 위기에서 벗어나 중국의 새로운 부흥기를 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덩샤오핑의 중국적 사회주의는 전혀 새로운 실험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혁명 전통에 이미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며, 중국 정치과정에서  실용주의 세력들은 좌파 세력과 더불어 중국 권력 구조의  주요한 구성원이었다는 점에서 마오쩌둥의 사망과 좌파 실험의 실패로 덩샤오핑의 개혁정권이 등장해 과감한 개혁 개방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3) [21세기 중국외교정책] (2006)-부강한 중국의 등장은 위협인가 기회인가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시기에 중국의 개혁 사회주의는 고도성장 시대를 열면서 부강한 중국의 부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였다. 사실, 지난 1978년말 개혁 개방을 통한 노선전환을 선언한 이후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오래 지속하는 경제발전 시대를 열면서 중국은 경제규모의 측면에서 제2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였고, 이와 동시에 군사적, 정치외교적인 차원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부상은 열강의 세력관계 변화를 불가피하게 촉발하게 될 것이며, 그런 변화는 우리 모두에게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제공한다고 하겠다. 사실, 지금까지 새로운 패권국가의 등장은 국제사회에 갈등과 전쟁을 동반하였다. 과거 역사는 새로운 제국이 등장할 때마다 패권 경쟁과 전쟁을 촉발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강한 중국의 등장도 역시 과거 패권국가의 사례가 그러했듯이 강대국간 세력개편 과정에서 전쟁과 갈등을 촉발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평화로운 일어남 (和平崛起)’을 통해 새로운 다원적 질서의 출현을 촉진할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중국의 대외정책을 다각도로 분석해 본 결과, 21세기의 탈냉전시대에 개발도상국가형 강대국으로 등장한 중국은 상당기간 경제발전과 현대화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위해서 장기적인 차원에서 미국과 서방세계와의 협력이 필수적이고, 국제사회의 안정과 평화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국 지도부의 현실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 서방 중심의 세계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보다는 미국과 서방과의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체제안의 개혁을 통한 변화를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부강한 중국의 등장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기존 질서를 위협하기 보다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안정적인 세력관계의 개편을 통한 점진적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4) [21세기 중국정치] (2008)-성공의 역설과 중국적 사회주의의 미래는 무엇인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1992년에 [중국혁명사]에서 필자는 중국혁명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은 왜 성공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였고, 1997년 [현대중국정치론]에서는 1989년 천안문사태와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중국적 사회주의가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면, 2008년의 [21세기 중국정치]에서는 중국공산당의 ‘성공’이 가져온 성과를 분석하고, 그것이 중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중국적 사회주의의 성공이 중국적 사회주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예측해 보려고 하였다.

 

개혁개방 30년간 중국적 사회주의는 그야말로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괄목할 만한 경제사회의 변화를 실현시키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중국적 사회주의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중국적 사회주의의 미래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성공의 역설’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적 사회주의는 체제위기에 직면한 순간 대담한 개혁 개방정책을 통해 체제위기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고도성장시대를 실현시키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런 성공으로 중국의 경제와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중국적 사회주의의 정치적 기반이 위협받게 되는 ‘성공의 역설’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성공의 역설’은 중국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박정희시대의 한국, 장징궈 시대의 대만과 같은 권위주의적 발전국가들이 중국보다 먼저 경험했던 역사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정치안정이 필요하다면서 권위주의 정치를 정당화했지만, 개발독재가 이룩한 경제발전이란 성공이 민주화의 도전을 초래하여 역설적으로 권위주의 발전국가를 위협하는 역사적 사례가 한국과 대만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역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역시 한국이나 대만과 같이 서구식 민주화의 길로 가게 될 것인가? 필자는 중국이 대만이나 한국과 같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는 않겠지만, 사회주의의 성공으로 중국의 경제발전과 사회변화가 가속화되면서 결국 탈 사회주의와 중국적 민주주의를 찾아 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중국적 사회주의의 성공이 중국적 사회주의의 종말을 초래한다는 역설을 증명하려고 한 것이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III.  중국공산당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중국 혁명의 승리를 견인해 내고, 중국과 같은 빈곤한 사회에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게 하고 사회주의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중국 공산당의 힘, 그리고 개혁 개방을 통해 고도성장을 실현, 부강한 중국의 등장을 현실로 만들어 낸 중국공산당의 힘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 중국공산당이 여러 차례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유연성과 적응력은 중국 공산당의 자기 혁신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런 자기 혁신 능력은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전개되고 있는 다양한 세력과 다양한 정책노선 간의 경쟁과 갈등, 협력을 통해 확보된다는 것이 필자의 가설이다.

 

사실 창당이후 현재까지 중국공산당의 역사는 다양한 세력 간 노선투쟁과 정책논쟁, 그리고 파벌 간 권력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당 초기부터 중국 공산당 지도부 내부에는 도시 중심의 노동운동을 주도하면서 전형적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을 지향하는 천두슈(陳獨秀)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농촌과 농민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인민대중에 의한 민중혁명을 지향하는 리다자오 (李大釗)를 중심으로 한 세력 간의 협력과 경쟁, 갈등이 중국 공산당의 역동성을 부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 항일 전쟁 중에도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이 주장하는 ‘농촌을 통해 도시를 포위하는 전략’을 추구하면서 홍군과 농촌지역의 홍색정권에 기반을 둔 세력과, 도시지역에서 조직적인 지하운동을 전개한 류샤오치 (劉少奇) 중심의 도시 지하당 세력들이 때로는 경쟁과 갈등을, 때로는 상호 협력하면서 중국공산당의 승리를 견인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중국공산당 내부에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존하면서 벌이는 경쟁과 갈등, 협력의 정치는 건국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비록 1945년 제7차 전당대회에서 마오쩌둥 사상이 공식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동등한 당의 지도이념으로 규정되었으며, 마오쩌둥은 당과 정부, 그리고 군부의 최고 권력을 장악하면서 최고 지도자로서 마오쩌둥의 리더십이 확립되었지만, 그런 마오쩌둥 시대에도 당내의 여러 정치 세력이 존재하고, 당내 세력 간 정책논쟁과 노선투쟁, 권력투쟁은 계속되었다.

 

개혁 개방시대에도 역시 개혁의 범위와 속도를 둘러싼 급진개혁파와 보수파간의 논쟁과 갈등이 중국정치의 역동성을 만들어 내고 있었으며, 중국 공산당 내부에 존재하는 두개의 정파, 두개의 정치 세력의 경쟁과 견제 현상은 당 대회를 통해 표면화되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2007년 10월에 개최된 17기 당 대회에서 공표된 주요 당직 개편, 특히, 당의 핵심적 권력기구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개편은 후진타오 이후의 후계체제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차기주자로 떠오른 시진핑(習近平) 상하이시 당 서기와 리커창(李克强) 랴오닝성 당 서기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입성과 이들의 권력 구조에서 위상과 그 역할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왜냐하면 시진핑은 자타가 공인하는 장쩌민 전 주석이 이끄는 상하이파와 태자당의 지원을 받고 있었고, 리커창은 현 후진타오 주석의 권력 기반인 중청단파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시진핑을 차기 주석 후보로 제시하면서도 경쟁관계에 있는 리커창을 차기 총리 후보로 배정함으로서 중국 공산당이란 하나의 지붕아래 두개의 세력이 상호 경쟁과 견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표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청 (李成)에 의하면 현재 중국 공산당 안에는 엘리트주의자 세력(elitists) 과 대중주의자 세력 (populists)이 중앙정치국은 물론이고, 중앙위원회와 같은 주요  권력기구를 양분하고 있으며, 따라서 시진핑-리커창 팀은 중국식 라이벌 간의 동거 정부 (China's Team of Rivals)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의 엘리트 정치 내부에는 두개의 세력, 두개의 노선이 존재하면서 정책논쟁과 노선갈등, 그리고 권력투쟁을 전개하면서 상호 경쟁하고 견제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당내 파벌투쟁과 경쟁, 그리고 상호 협력은 창당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고, 바로 이런 파벌간의 경쟁과 협력이 중국 공산당의 유연성과 적응력을 높이고 있으며, 중국공산당으로 하여금 현실의 변화와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책과 노선 갈등이 언제나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대혁명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권력이익과 정책정향,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세력이 정면충돌하게 되면 중국 정치는 파국적 혼란에 직면할 위험성에 노출된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문화대혁명의 재난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당내의 노선갈등과 정책논쟁을 일정한 규칙과 절차에 따라서 규제하려고 하고 있으며, 이런 당내 갈등과 경쟁의 제도화가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인가에 따라서 중국 공산당의 미래도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IV 끝으로 덧붙이는 말: 공자와 버나드 쇼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스스로 섰고, 40세에 미혹되지 않았으며, 50세에 천명을 알았고, 60세에는 귀가 순해졌고, 70세에는 하고 싶은 바를 따르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공자의 이런 말은 나와 같은 범인에게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오히려 버나드 쇼의 묘비명,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는 말이 훨씬 더 실감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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