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교수의 중국정치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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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초점 인물 : 멍쉐능 (盟學農)
 중국정치연구실  | 2005·05·06 11:11 | HIT : 4,262 | VOTE : 689 |
         

 최근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4월 SARS 문제로 당시 위생부장  장원강 (張文康)과 더불어 베이징 시장직에서 해임된 멍쉐능 (盟學農: 사진)의 복권 사실을 간단히 보도하였다. 후진타오 주석의 측근으로 알려진 멍쉐능 전 베이징  시장의 극적인 출세와 불명예 퇴진 , 그리고 재기를 통해 중국정치의 한 단면을 엿볼수 있다.

 

     지난 9월 29일 관영 신화통신사는 멍쉐능 (盟學農)이 국무원 산하 南水北調工程建設委員會 판공실 당조 부서기겸 부주임으로 임명됐다는 공지사실을 간단히 보도하였다. 뉴욕에서 발행되는 중국어 인터넷 신문 多維新聞網 (chinesenewnet.com)은 10월 1일자 기사에서 지난 4월 사스 (SARS: 신형 폐염■重症急性呼吸器症候群)  문제로 당시 위생부장  장문강 (張文康)과 더불어 베이징 시장직에서 해임된 멍쉐능 (盟學農: 사진)이 한 직급 낮추어 복권된 사실을 확인 보도하였다.  


     그런데 멍쉐능이 새로 배치된 국무원 산하 남수북조(南水北調) 공정 건설위원회란 중국 북부 지역의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 4천8백60억위안( 약 68조원)을 투자해 남쪽 지방에서 물을 끌어대는 대형국책사업으로서 溫家寶 총리가 직접 관장하는 중요한 사업이며, 이런 사업을 주관하는 판공실의 부주임이란 직책은 부 부장급 (차관급)이지만, 실질적으로 부장급 (장관급)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란 점에서 멍쉐능은 일단 재기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 이 홈페이지에 소개된 멍세능 (盟學農)의 간략한 이력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Meng Xuenong: 孟學農 (1949- ): 학력과 경력, 그리고 공청단 배경을 바탕으로 북경시장으로 등장,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았다가 2003년 4월 SARS사태가 악화되면서 북경시장직을 사임을 한 비운의 인물; 그러나 2003년 10월 한 직급 내려 국무원 南水北調工程建設委員會 판공실 당조 부서기, 부주임으로 복직되어 다시 주목의 대상이 됨; 산동 출신; 연구생 학력; 공상관리 석사; 72년 입당; 북경 제2자동차제조공장 공인, 공장 단위 서기, 절강성위 조직부 간부, 성위 판공청비서; 공청단 북경시위 부서기, 북경시 음식점연합공사 총경리; 북경시 상공행정관리국장, 93년 북경시 부시장, 96년 4월 북경시 정법위 부서기, 2002년 12월 북경시 당위 부서기; 2003년 1월에 북경시장 당선; 16기 당중앙위원

     사실 지난 2003년 1월 멍쉐능이 북경시장에 선임되었을 때만 해도 내외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멍쉐능의 간략한 이력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멍쉐능은 제 4세대를 대표하는 고학력의 전문기술 관료 출신이고, 게다가 후진타오 총서기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잘 알려진 공청단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멍쉐능은 중국 과기대학 공학 석사 출신이고, 국영기업과 정부기관, 그리고 공청단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정치적 충성심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이른바 紅專兼備의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멍쉐능에 대한 이러한 중국 내부의 기대는 그가 북경시장으로 선임된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한 2003년 1월 19일자 인민일보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고 하겠다.  인민일보에 의하면 2003년 1월 19일에 폐막된 북경시 제12기 전인대 1차 회의에서 700여명의 대표들이 투표에 참여하여 압도적인 표로 孟學農을 북경시장으로, 그리고 劉敬民등 8인을 북경 부시장으로 선임했다고 보도하면서 시장은 물론, 부시장 8인중 반수는 새로운 인물들이라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멍쉐농을 중심으로 구성된 새로운 북경 시 정부 지도부의 특징은 빼어난 경력을 가진 연부역강한 인재들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보도에 따르면, 신임 북경시 지도부의 평균 연령은 51세로, 멍쉐능 시장이 53세, 그리고 약관 35세의 부시장 陸昊이 포진하여 그야말로 젊고 역량이 많은 지도부를 구성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패기있고 역량이 증명된 북경 시정부 지도부를 대변해서 멍쉐능 시장은 시장에 선임된 직후 기자회견을 가지고 책임정부, 투명정부, 법에 의한 사무처리 원칙을 약속하였다. 또한 멍쉐눙은 자신의 공청단 경력과 후진타오 총서기와의 관계를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공청단 서기로 재직할 당시의 후진타오 총서기의 인품에 대해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은 지도자"라고 찬양함으로서 후진타오 총서기와의 개인적 관시 (關係)를 자랑하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의욕적으로 북경시장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정치적 도약을 꿈꾸던 멍쉐능에게 예기치 못했던 불운이 찾아 온 것은 중국이 SARS 사태에 휘말리게 되면서부터이었다.


     2003년 4월에 사스는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북경은 물론 중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중국 정부의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지방정부는 물론이고 중앙정부도 사스 사태를 은폐하거나 축소하기 일쑤였고, 사스의 확산 위험성이 큰 북경에서는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는 형편이었다. 권력 이양기라는 과도기에 나타나는 지도부의 일시적 공백상태와 위생당국의 관료주의적 무사안일, 그리고 인민해방군 산하의 의료기관들과의 협력체제 미비등으로 북경을 비롯한 중국 전역에서 사스 확산 위험성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과 경계심이 고조되면서 국가 신인도까지 심각하게 훼손되는 사태로까지 악화되었다. 이처럼 사스 사태에 대한 잘못된 대응으로 후진타오 신생 정부의 신뢰도까지심각하게 위협받는 지경까지 악화되자, 후진타오 총서기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03년 4월 17일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주관으로 긴급회의를 소집, SARS 현황을 외부에 소상하게 공표하고, 모든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해서 사스 방역작업에 나설 것을 독려하였다. 이와 함께 4월 20일에는 그 동안 북경과 중국 전역에서의 SARS 현황을 축소 발표하고, 미온적으로 대응한 책임을 물어 당시 위생부장이었던 장원강 (張文康)과 함께 멍쉐능 북경시장을 해임하였다. 

     * 이 홈페이지 인명록에 수록된 장원강의 약력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Zhang Wenkang: 張文康 (1940- ): 2003년 3월에 국무원 위생부장에 재선임되었다가 SARS사태가 악화되면서 책임을 지고 2003년 4월 위생부장직에서 해임; 상해 출신; 66년 공산당 입당; 62년 상해제일 의학원의료계, 현 상해의과대학 졸업; 졸업후 해방군 제2군의대학 연구실 주임, 강사, 부교수, 부교장등 역임; 88년 소장 계급; 90년 해방군 총후근부 위생부 부부장; 93년 위생부 부부장, 국가중의약관리국 국장; 97년 전국금독공작영도소조 부조장; 98년 위생부장; 99년 중화의학회 회장등 역임; 중공 15기-16기 중앙위원

     사실, 장원강 (張文康) 위생부장의 해임은 위생부장이었다는 직책이  SARS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위치란 점에서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장쩌민 전 주석의 주치의이고, 장쩌민의 신뢰를 받아 두 번씩이나 위생부장으로 재신임 받았던 인물이란 점에서 장쩌민의 퇴진과 같은 시기에 문책 인사를 당했다는 사실이 일부 호사가의 화제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더구나 후진타오 체제가 들어서면서 그렇지 않아도 투명하고 책임 있는 정부를 표방하는 마당에 SARS사태에 대한 문책은 불가피한 조치란 점에서 장원강의 사임은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멍세능 (盟學農)의 낙마는 의외의 사태로 받아 들여졌다. 비록 북경시에서의 SARS 현황 파악과 대처가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북경시장이 책임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멍세능의 낙마를 좀더 큰 권력 게임의 차원에서 분석하려고 하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신구 권력 이행 과정에서 상호 갈등과 상호 조정의 차원에서 타협적인 조치로서 장쩌민 계열의 장원강 위생부장과 후진타오 계열의 멍세능 북경시장을 맞교환하여 봉합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의 타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멍세능과 장원강의 공개적 문책 인사는 전례가 별로 없는 이례적 사례로 꼽히게 되었고 후진타오 체제의 책임감을 반영한 조치라고 환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관료 사회의 전례를 참고하고, 멍세능과 장원강의 후원세력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복권이 이미 예상되었던 것이기도 하였다. 지난 8월초에 뉴욕에서 발간되는 중국어 인터넷 신문 多維新聞網 (chinesenewnet.com)은 이들 두 사람의 복권이 임박했다는 기사를 내보면서 SARS 사태는 이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권력 교체기의 관료의 무사 안일주의의 소산이고, 당과 정부의 고위층도 권력 교체에 주의력이 분산되는 바람에 SARS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했다는 점, 사회와 민심의 안정을 위해 이들 두 사람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게 한 점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들의 복권 가능성을 예고했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멍세농의 복권이 먼저 실현되었고, 곧 이어 어떤 형태로든 장원강의 복권도 실현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역시 후진타오와의 관시 (關係)가  좋은 멍세농의 복권이 먼저 실현되는 것을 보고,  ‘역시 실세는 다르다’는 논평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03년 1월 북경시장에 선출되어 내외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멍쉐능, 불과 4개월후인 2003년 4월 20일에 북경 시장직에서 불명예 퇴진하지 않을 수 없었던 비운의 차세대 선두주자가 2003년 9월말에 복권되는 한편의 정치드라마는 역동적인 중국 정치의 한 단면을 증명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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