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교수의 중국정치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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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페이퍼]와 관련된 몇가지 소개
 중국정치연구실  | 2005·05·06 11:28 | HIT : 5,789 | VOTE : 749 |

1. [천안문 페이퍼]란 어떤 책인가

최근 미국 및 일부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천안문 페이퍼]라는 책 출판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장 리앙(張良)이라는 가명의 중국 공산당 간부 출신 인사가 편찬하고, 미국의 저명한 중국 전문가인 Andrew Nathan과 Perry Link가 영문으로 편집해서 PublicAffairs라는 출판사에서 금년 초에 출판한 책, [천안문 페이퍼: 그들 자신들의 인민에게 무력을 사용하기로 한 중국지도부의 결정에 대한 자신들의 증언](The Tiananmen Papers: The Chinese Leadership's Decision to Use Force Against Their Own People-In Their Own Words)은 중국정치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도 몇 가지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첫째, 천안문 민주화운동에 대한 유혈 무력 진압을 결정하는 과정에 대한 상세한 내부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장 리앙이란 인물은 누구이며,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인가. 그렇다면 왜 그는 지금 그런 자료를 공개하려고 하는가.
둘째, 장 리앙이 복사해서 유출하는데 성공한 1차 자료는 분량면에서도 엄청난 것이었지만, 또한 내용면에서도 상당히 민감한 것이 많았다. 특히, 당과 정부의 중앙 지도부가 위치한 中南海와 덩 샤오핑의 저택 등에서 개최된 주요한 회의에서 진행되었던 토론 내용에 대한 기록 자료 등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인데, 과연 장 리앙이 어떻게 이런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으며, 장 리앙이 제공하는 이런 문건 자료가 믿을 수 있는가.
셋째, 장 리앙이 제공한 내부 문건의 공개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가. [천안문 페이퍼]의 출판을 통해 그 동안 알려진 것 이상의 새로운 사실이나 해석이 가능했는가.      

우선 장 리앙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장 리앙이 중국공산당 간부출신이며,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주요 문서 관리를 책임진 고위 관료들과 상당히 밀접한 관시(關係)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부 문건 자료에 대해 접근할 수 있었고,  이런 자료에 대한 컴퓨터 복사 파일을 만들어 유출해 낼 수 있었다는 그의 설명을 직접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장 리앙을 접촉한 미국측 중국 전문가, 이를테면 Nathan이나 Schell 등이 다각도로 검토해 본 결과 장 리앙은 믿을 만한 인격적인 인물이며, 그가 제공한 자료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을 그대로 수용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그는 지금 그런 민감한 내부 문건을 공개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해 그는 직접 [천안문 페이퍼]의 첫 머리에서 '6-4사태에 대한 회고 (Reflections on June Fourth)'라는 글을 발표하고, 이런 문건 공개에 대한 그의 정치적 동기를 밝히고 있다. 즉, 중국의 민주화가 실질적으로 진전되려면 무엇보다도 중국공산당이 변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구체적으로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리펑 (李鵬)과 같은 보수파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퇴조하고, 보다 민주적인 개혁파가 득세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내부 문건을 공개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천안문 페이퍼]를  통해서 리펑은 다시 한번 당내 보수파의 대표자임이 입증되었다. 천안문 학생운동의 애국심을 인정한 짜오즈양(趙紫陽)과 달리, 리펑은 학생들의 배후 조정세력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표명하면서, 덩 샤오핑을 비롯한 당내 원로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각종 정보를 제공하였다. 따라서 결국 당내 원로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천안문 시위를 반혁명 동란으로 규정하고, 마침내  무력진압을 결정하게 하는 데 리펑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재확인되었다. 이런 사실은 리펑의 정치적 입지를 다시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장 리앙은 내년에 개최될 16차 당 대회에서 있게 될 리더쉽 개편과정에서 리펑과 같은 당내 보수세력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민주개혁파의 영향력을 복귀시킨다는 정치적 목적에서 이런 내부 자료를 공개하고, 천안문 사태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한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두 번째의 문제는 장 리앙이 제공한 방대한 자료의 성격과 신뢰도에 대한 것인데, 이와 관련해서 [천안문 페이퍼]에 수록된 Andrew Nathan의 서론 (The Documents and Their Significance), 그리고 이 책의 말미에 첨부한 Orville Schell의 후기 (Afterword: Reflections on Authentication)를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Nathan이 서론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장 리앙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후야오방 (胡耀邦)이 회의중 심장이상 증후로 쓰러진 1989년 4월 8일경부터 천안문 민주화운동에 대한 무력진압이 단행되고 장쩌민 (江澤民)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된 6월 말경까지 북경을 비롯해 중국 전역에서 발생한 학생과 대중들의 시위에 대해 지방  당과 정부의 각급 기관들이 중앙당과 중앙정부에 보고한 정세 및 정보 보고서, 그리고 중앙당과 정부 주요 지도자 회의에서의 토론 및 결정 기록등 천안문 사태와 관련된 문건자료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따라서 Nathan은 우선 장 리앙으로 하여금 천안문 민주화 운동에 대한 무력진압 결정이란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자료를 선별하도록 했다는데, 그렇게 선별한 중국자료의 분량만도 한자로 약 57만자의 분량이었고, 중국어로 약 516페이지가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Nathan과 Link는 영문판으로 출판하기 위해 대부분의 문건 자료를 다시 대폭 요약하고, 필요한 간략한 해설을 붙여 출판했다는 것이다.

이런 작업과정에서 Nathan 등은 장 리앙이란 자료 제공자와 긴밀하게 협력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그의 사람됨과 그가 제공한 자료에 대한 신뢰도가 깊어지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Schell도 후기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가지 유형의 비밀 문건 자료 공개과정을 소개하면서 장 리앙이라는 자료 제공자의 인품도 믿을 수 있고, 그가 제공한 자료도 믿을 만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 번째로  장 리앙이 제공한 자료가 믿을 만한 정부 내부 보존 자료라고 한다면, 이런 자료의 공개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것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필자의 입장은 유보적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천안문 페이퍼]의 출판으로 지금까지 모르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것은 없다. 천안문사태가 발생한 1989년경에 중국의 지도부 구성과 그들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것이나, 천안문 사태에 대한 당 원로들과  정치국 주요 지도자들의 입장이나 견해도 중국 전문가들에게는 생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안문 페이퍼]가 다른 자료나 해설서와 다른 점은 무엇보다도 Nathan이 주장한 것처럼 처음으로 문건을 통해서 천안문사태에 대한 지도부의 관점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 동안 시위참여자인 학생이나 지식인들의 관점에서 천안문사태를 접근한 것들은 많았지만, 당시 중국 지도부가 어떤 정보자료를 기초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리고 그런 정책결정과정에서 개별 지도자들은 어떤 입장을 취했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천안문 페이퍼] 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 냈다기보다는 이미 알려진 사실을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자료를 바탕으로 재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전후로 중국의 중앙지도부가 어떤 정보와 자료에 입각해서 어떤 판단을 내렸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천안문 민주화운동에 대해 무력 유혈진압을 강행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가 보다 분명하고 생동감 있게 파악될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천안문 페이퍼]의 출판이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2. [천안문 페이퍼]의 발췌 소개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천안문 페이퍼]는 장 리앙이 제공한 방대한 자료를 영문으로 번역 소개하는 과정에서 대폭 축소 요약했는데도 전체가 513 페이지가 되는 분량이다. 또한 이 책은 Zhang Liang이 자신의 입장을 간략히 밝힌 '6·4사태에 대한 회고' (Reflections on June Fourth)와 Andrew J. Nathan의 서문 (The Documents and Their Significance), 그리고 이 책 말미에 덧붙인 Orville Schell의 후기 (Afterword: Reflections on Authentication) 이외에 본문은 1986년부터 1989년 봄까지의 중국 정치를 개괄한 Prologue와 6-4 사태이후 중국정치의 갈등을 정리한 Epilogue 이외에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9년 4월부터 6월 4일의 비극적 유혈무력진압 당일에까지의 기간을 모두 10개의 단계로 구분하고 각 국면의 성격과 쟁점, 그리고 발전과정을 정리 소개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이런 방대한 자료를 모두 소개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Nathan은 [천안문 페이퍼]의 출판과는 별도로 일부 자료를 축약해서 계간 외교 전문지 2001년 1-2월호에 게재하였고, 한국 및 일부 중문판 잡지 등에서도 부분적으로 번역 게재하였다.

1) 영문 발췌문

▶ Andrew J. Nathan : "The Tiananmen Papers, " Foreign Affairs  (January/February, 2001) 

미국 외교 전문지 Foreign Affairs에 실린 Nathan의 이 글은 앞에서 언급한 책인 [천안문 페이퍼: 그들 자신들의 인민에게 무력을 사용하기로 한 중국지도부의 결정에 대한 자신들의 증언] (The Tiananmen Papers: The Chinese Leadership's Decision to Use Force Against Their Own People-In Their Own Words)의 주요 내용만을 간추려 실은 것이다.  513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20여 페이지로 줄였기에 주 내용 가운데 5월 13일부터 6·4 사태가 끝난 직후까지의 기간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당과 정부의 주요 지도부 사이의 회의 내용 가운데 핵심이 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문제, 즉 덩 샤오핑(鄧小平) 등 천안문 사태 당시 최고 권력자들의 군병력 투입 결정과정과 짜오즈양(趙紫陽) 총서기의 실각 과정 , 원로들에게 강경진압을 건의한 리펑(李鵬)의 역할, 계엄령을 적극 수행한 장쩌민(江澤民)이 공로를 인정받아 총서기로 발탁된 배경 등의 정책결정과정이 주로 담겨있다.  발췌본 형식으로 자료를 밝힌 이 글은  날짜별로 그 내용을 정리하고 있으며 간간이 부연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그 부연 내용가운데 한가지를 살펴보면 5월 27일 밤 덩 샤오핑과 7명의 원로들은 덩 샤오핑의 자택에서 다섯 시간 동안 만나 짜오즈양 후임 총서기로 장쩌민을 임명하기로 거수로 동의하였는데 이에 대해 Nathan 교수는 이는 정치국 상무위원회만이 그 같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중국 공산당의 당헌을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서론 부분에서는 간략하게 6·4사태가 발생하기 전의 분위기를 그려냄과 아울러 1998년과 1999년 사이의 중국 민주당 사건과 1999년의 Falun Gong 사건에 대한 중국 당과 정부의 대응도 이 천안문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즉 중국 공산당의 대응을 설명하는 요인은 무엇보다도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유지하는 것이고 따라서 독립조직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에서는 6·4 사태 이후의 중국의 분위기와 대학가의 분위기를 언급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2) 한국어 발췌문

<월간중앙>, "1989년 천안문사태 당시 중국 최고지도부 비밀 대화록 : '천안문  페이퍼 발췌" (2001년 2월호 449-459) pp
<주간조선>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진상 : 美 포린 어페어스지 '톈안먼 페이퍼'로 재구성한 유혈극 전야의 중국 지도부" (2001년 2월 1일 1638호)

<월간중앙>에서는 reign Affairs>에 실린 이 "Tiananmen Papers"를 발췌하여 번역해 놓았다.  아울러 이 [Tiananmen Papers]를 둘러싼 이야기들, 즉 이 문서를 공개한 장 리앙이란 인물, 중국의 반응 및 이 문건의 진위여부를 둘러싼 여러 논쟁들, 그리고 중미관계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주간조선>에서는 oreign Affairs>의 "Tiananmen Papers"를 재구성해서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Tiananmen Papers"를 내용 그대로 번역한 것은 아니고 간략하게 내용을 설명하고 이에 해당하는 대화를 "Tiananmen Papers"에서 선택하여 수록하고 있다.  앞부분에서는 자료의 진위여부에 대해서 편자들의 의견을 싣고 있으며 학생들이 시위에 들어간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장쩌민이 총서기로 임명되는 과정을 보충하기 위해서 <중국시보(中國時報)>의 내용도 첨가하고 있다.        

3) 중국어 발췌문

▶ "關於 天安門文件" <北京之春> 2001年 2月號 (總第 93期)

여기에서는 reign Affairs>에 실린 발췌문보다 더 자세하게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내용뿐만이 아니라 이 자료에 연관된 관련 사항을 상당히 상세하게 짚어내고 있다.  간략히 살펴보면 이 [Tiananmen Papers]의 발표 시기와 장소는 상당히 치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건의 원문은 본래 중문판이었으나, 먼저 등장한 것은 영문판이었다. 만약 중문판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영문 번역판이 나왔더라면, 지금과 같은 이러한 여파가 나타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최근의 중국 고위층의 권력투쟁이 격화되고 있는 와중에 발표됐다는 점에서 현실정치에 대해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자 했을 것이라고 파악한다.

다음으로 이 문건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도 양측의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어떤 이는 문건에 쓰인 대부분의 용어가 홍콩, 대만지역의 색채를 띠고 있어 각 당사자들의 언어습관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 발표된 중문판은 영문판의 번역판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평의 효력은 차후 중문원판이 나온 후에야 검증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어떤 이는 문건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엄폐하고 누락된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Tiananmen Papers]의 발표에 따른 일련의 반응과 여파들은 아마도 당초 저자의 예상보다 더 강렬한 것일 거라고 보면서 주요내용을 보다 자세히 날짜별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끝에서는 "關於 《中國 "六四" 眞相》 一書的聲明"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천안문사건의 피해자들은 이 자료의 발간을 환영하며 천안문 사건의 진상을 신속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명인은 丁子霖, 張先玲, 蘇撚秗, 周淑莊, 徐珏, 李雪文, 尹敏, 尤維潔, 郭麗英, 方政, 齊志勇 등 111인 등이다. 



3. The Tiananmen Papers에 대한 반응 및 평가

1) 중국정부의 반응

<人民日報 >2001年 1月 9日 "Foreign Ministry Spokesman on Tiananmen Papers"

이 문건에 대한 중국 측의 최초의 반응은 1월 9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인 주방짜오(朱邦造)를 통해 나왔다.(人民日報 2001年 1月 9日 "Foreign Ministry Spokesman on Tiananmen Papers")  그는 " 89년 베이징에서 발생한 정치풍파에 대한 우리 당과 정부의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중국 정부의 첫 입장을 발표했다.  그는 또 " 장쩌민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단결돼 있다."며 천안문 페이퍼 공개 후 제기된 지도부 내 권력 투쟁설을 간접적으로 부인했다 . 그는 또 "역사적 자료를 날조, 왜곡해 다시 한번 '이 일(천안문 사태)'을 문제삼음으로써 중국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어떤 시도도 모두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미국을 우회적으로 공격했다.  한편 장쩌민 국가주석도 이 문서와 관련해 처음 거론을 하였는데 이를 첫 보도한 미국 CBS 방송을 겨냥해 "언론이 자신의 관점을 밝히는 것은 좋지만 사실을 왜곡해선 안된다"고 불만을 내비쳐 중국 지도부의 불편한 심기를 밝혔다.  


2) 서방 언론과 지식인 사회의 반응

중국뿐만이 아니라 서구에서도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이는 이 자료의 진위여부와 그 내용에 대한 평가 및 앞으로의 전망과도 맞물려 있다.

[New York Times], "New Window on Tiananmen Square Crackdown" By Richard Bernstein(2001.01.06)

이 기사에서는  [Tiananmen Papers]에 대한 상세한 해설과 이후의 전망을 싣고 있다.  물론 이 자료가 원본형태가 아니라 디스켓에 보관되어 있었던 점에 비추어 진위여부를 거론하고는 있으나 여타 전문가와 James R. Lilley의 견해를 통해 이 자료가 허위로 조작되지는 않았다는 데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한 만일 덩샤오핑과 다른 원로그룹이 없었다면 온건파가 권력투쟁에서 승리했을 것이며 천안문사건의 유혈극은 피할 수 있었고 지금보다 더 확대된 정치적 개방과 경제적 자유화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자료로 인해서 장쩌민과 리펑이 정치적 권위에 타격을 입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NYT는 이 자료가 6주간의 천안문사건과 이후의 사회적으로 통제된 기간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최고지도자들의 특성과 그들을 짓누르고 있던 두려움과 논쟁형식 등에 대한 상당히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Philip Cunningham, "Book Review: THE TIANANMEN PAPERS Compiled by Zhang Liang" (중앙일보 2001년 1월 17일)

이 글에서는 [Tiananmen Papers]를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Philip Cunningham은 그 당시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의 증언과 사진 ,비디오 등으로  천안문 사건에 대한 많은 자료가 이미 축적되어 있기에 이번에 드러난 [Tiananmen Papers]는 새로운 사실이 별로 없고 별다른 기여를 하고 있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 당시 한달 동안 줄곧 인민일보나 CCTV를 보았다면 이 자료에 나온 많은 얘기들을 이미 알게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진위여부에 대해서도 이 자료는 원본 형태가 아니기에 제대로 된 검증을 할 수가 없어 상당히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특히 이 자료 가운데 중요한 시점인 6월 2일의 대화내용은 믿을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작가는 질이 떨어지는 소설처럼 각각의 인물들에 대해 이전에 이미 잘 알려진 상투적인 모습에 따라 내용을 만들어내었다."고 혹평한다.  

蘇紹智 "重評 六四 推動中國民主化--談 《天安門密件》之出版" <北京之春> 2001年 2月號(總第 93期)

소소지(蘇紹智 : 호요방의 브레인으로서 개혁파 정치경제학자이다. 83년이래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다 87년 반부르조아 자유화운동과정에서 소장직에서 해임당하고 당적을 박탈당하였다.  89년 5.15일에는 학생시위 지지의 <5.16 성명>에 서명하기도 하였다.) 는 <北京之春>에 이 글을 기재하여 이 [Tiananmen Papers]를 평가하고 있다.   이 글을 간략히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6·4진압은 중국역사상 가장 큰 범죄이다. 그러나, 6·4를 전후한 중국공산당 내부에서의 정책결정의 내막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완벽한, 정식의 문건이 없었던 터에 이 책이 발간됨으로서 당시의 내막에 대해 보다 더 자세한 증거와 실증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문헌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얻으며 폭발성의 뉴스가 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현재까지,《天安門密件》의 영문역자인 Andrew J. Nathan, Eugene P. Link, Orville Schell 3명의 교수는 수개월간의 번역, 고증, 저자와의 장시간에 걸친 문답을 통해 이 자료의 신빙성을 확신하고 있다. 나 또한 자료의 진실성을 믿는다.

이 책은 문헌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중국 고위층의 내막과 진상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현재까지 매체에서 드러난 바에 의하면, 최소한 두 가지 방면에서 이러한 의의를 지닌다.  우선, 중국 고위층의 정책결정과정과 운영과정에 대해 드러냈다.   사람들은 중국 정치를 원로정치라 일컫는다. 89년 5,6월간에 모든 중요한 정책결정은 모두 등소평을 위시한 원로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들은 현직정치직위가 없으나 헌법 외, 공산당 당장 외의 종신법정의 역할을 하였다. 계엄, 군대투입, 장쩌민을 총서기에 발탁하는 결정,  학생과 시민들에 대한 학살, 심지어 언제 발포하고 언제 사후정리까지 하는 것 모든 것에 대해 등소평의 명령이 있었으며, 양샹쿤에 의해 정치국 상임위원회로 전달되었다.

또 다른 면에서 중공고위층의 파벌과 권력투쟁을 폭로하였고, 중국 영도층의 개개 인물의 6·4사건중의 태도와 작용, 이미지도 폭로되었다.  8명의 원로들은 공산당 내 대표적인 보수세력이며, 리펑은 당시 보수세력 정권핵심중의 대표이다. 《密件》중에서 리펑은 강한 보수적 색채를 띄었는데 민간에서 그를 "도살자"로 일컬어지는 것이 이제 증명되어졌다. 덩샤오핑은 비록 중국개혁개방의 창도자이자 설계사로 추앙받고 있으나, 89년에는 보수세력편에 서서 인민을 진압하는 명령을 내리고 개혁파대표인 짜오즈양을 파면시키고 강경파인 장쩌민을 등용시켰다. 이는 덩샤오핑의 씻을 수 없는 오점과 죄악이다. 《密件》은 짜오즈양의 이 시기에서의 입장이 존경받을 만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평화와 민주, 법률의 방도로 문제를 해결코자 했으며, 정치개혁에 주력하고 모순의 격화와 계엄을 반대하였다. 인민들이 그를 중국공산당의 첫 번째로 권세와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총서기라고 일컬었던 것을 봐서도 알 수 있다. 《密件》에서 차오스(喬石)는 기회주의자로 그려지고 있다. 5월17일 정치국 상임위원회는 계엄령 시행 여부에 대해 투표를 실시했는데, 차오스는 기권표를 던졌다. 그러나, 6월3일 학살전야에 차오스는 즉각 진압을 주장했다. 이에 어떤 이는 글을 통해 "기권표를 던진 자는 대사를 논할 자격이 없다."라고 비평했다.

《天安門密件》은 현재 중국의 정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고위층권력투쟁의 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강경파가 국가주석직 쟁탈을 막는 작용을 할 것이다. 장쩌민의 총서기 취임의 불법성 또한 《密件》에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江은 《世界經濟導報》에 대해 강경하게 대처하면서 원로들의 총애를 얻게 되었으며, 5월17일에는 이미 入京하기로 결정지어졌으므로, 그 또한 "6·4"참변에 대해 책임이 있다. 《天安門密件》의 출판은 바람직한 일이며, 우리는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한다.

위에서와 같이 다양한 반응과 평가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Tiananmen Papers]는 앞으로 당분간 진위여부를 떠나 그 내용으로 인해 중국내부에서나 중미관계에서나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아울러 4월 중문판이 발행되면 그 파장은 다시 한번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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